<프롤로그> 사회적경제(지원기관)에 취직하다.
interviewee / 풀뿌리사람들 사회혁신가센터 송엄지
Q.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왜 나인가? 부담 엄청 됐어요. 할 말이 뭐가 있을까. 기획 내용을 보면서 플랜B가 떠올랐어요. 그런데 플랜B는 다 서울에 계신 분들 이야기거든요. 인터넷을 통해 공감을 많이 하지만 실제로 만나기엔 물리적인 거리가 있죠. 그래서 대전 안에서, 특히 사회적 경제 안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이야기와 이런 인터뷰를 통해 실무에 대한 정보를 얻고, 일상적으로 만날 수 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풀뿌리사람들'이라는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어요. 소속된 곳은 사회혁신가센터인데, 사회혁신가를 발굴하고, 사회적기업 창업 교육 및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어요. 주로 제가 맡은 건 교육진행과 지원사업제반의 행정업무에요.
**풀뿌리사람들 : 삶의 터전에서 생활의 불안과 사회문제를 함께 연대하여 극복하고자 하는 지역의 사회혁신가, 마을활동가를 발굴하여 대전의 사회적 경제 생태계를 구성 할 수 있는 단위로 성장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비영리 사단법인. (www.pool.or.kr)
Q. 취직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예전에 공기업 자회사에서 일했는데, 편했어요. 통근버스로 다니고, 칼 같은 9 to 6에, 나머지는 전부 내 시간이고. 그래서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다른 모임이나 활동을 할 수 있었어요. 그 때 TEDx Daejeon이라는 비영리 컨퍼런스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이 있는데, 그녀가 풀뿌리사람들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그 전에는 시민단체에 대해 몰랐는데, 이 사람 일하는 모습 보니까 풀뿌리사람들이라는 조직에 들어가 보고 싶었어요. 그녀가 말하는 이야기나 단체에서 하고 있는 일은 굉장히 트여있었고, 기존에 상상했던 것과 달랐어요. 그래서 여기 가면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약간의 환상이 생겼어요. 그러다 우연히 계약직이 끝나 갈 무렵, 풀뿌리사람들 채용 공고가 뜬 거 에요. 기존에 하던 일이 무료해질 때여서, ‘한 번 지원해볼까?’하고 이력서를 넣게 됐죠. 사실 될 거란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Q.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경제란?
부끄럽지만, 당시 채용공고가 떴을 때 처음 알게 되었어요. 이력서에 사회적 경제 관련 내용을 쓰라고 했는데, 이상하게 썼던 것 같아요. 하도 오래돼서 뭐라고 썼는지도 기억이 안나요. 처음 사회적 경제를 접할 때는 ‘아, 여긴 뭐지?’였어요. 진짜. 그런 상태로 처음 맡은 일이 정부지원사업 이다보니 행정 따라가느라 현장에 대한 감각이 별로 없었어요. 비영리단체 활동을 했었지만, 업무라기보다 자원활동이었고, 사회적기업에서 일 해 본 경험도 없어서 더욱 몰랐던 것 같아요. 일하면서, 특히 초반에 사회적기업 현장을 다니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이 생각보다 긍정적이진 않았어요. 재정지원이 없으면 지속가능하기 어렵고, 사회적 경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부족하고. 이걸 개선하지 못하면 사회적기업은 ‘살아남기 힘들겠다’라는 점? 그래도 창업단계를 지원하면서 좋은 일 하겠다 오셔서 노력하는 분들을 보면 사회에 작지만 변화의 지점이 보이는 것 같아 기대도 생겼어요.
사회적 경제에 대해 명확하게 ‘이거다!’라고 말 할 순 없지만, 아마도 과거의 경험에서 나온 욕구가 아닐까 싶어요. 저는 건축학을 전공했는데, 대학 다니면서 늘 고민했던 것이 있었어요. 건축의 결과물은 사람이 사는 곳이고 활동하는 공간인데 제가 배우던 당시에 느꼈던 건 그저 전문가로서의 우월함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현장에 나가서 일해보고 싶단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Q. 일하면서 보람을 느끼거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생각의 전환을 맞이한 계기가 좀 있어요. 처음에 들어와서 너무 막연했을 때, 사회적기업 기초컨설팅이라고 사회적기업을 운영하시는 초기엔 노무/회계 부분이 취약해서 전문가를 연결해 주는 게 있는데, 거기를 따라다니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때 뭔가 해소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최근에는 성장에 대한 고민이 많이 들어요. 스스로 역량부족을 느끼는 것과 이게 내가 원하는 것이 맞는 건지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 때가 있어요. 더불어 아쉬운 건, 어떤 사람들은 사회적기업이니까 금액을 싸게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좋은 일 한다는 게 금액으로만 따지는 건 아니잖아요. 질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원가라는 게 있는데, 그게 단지 사회적기업이라는 이유로 무시되거나 수요자에 의해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되는 경우엔 많이 답답하죠.
Q. 일 할 때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요? 그래서 노력하는 것이 있다면?
저는 사람 만나는 게 힘든 것 같아요. 그리고 행정 처리하는 것도. 어렵지만 못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평소에 다른 사람들에게 개인의 생활을 묻는 걸 잘 하지 않아요. 왠지 상대방이 부담스러워 할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은 의식적으로 많이 물어보려고 노력해요. 특히 창업팀을 만날 때, ‘밥 먹었어요?’ 이 말도 평소엔 잘 안 물어 봤거든요. 근데 그 사람에 대해 일상적으로 어떻게 지내는지를 모르면 그 사람에 맞게끔 도와주기 힘들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일방적인 서비스 제공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지원을 위해서는 중요한 것 같아요.
Q. 일하면서 주로 어떤 도움을 받았나요?
어렵다 느낄 때 마다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비영리 회계행정에 대해 잘 모를 때엔 법인의 회계담당자분을 거의 붙잡고 늘어지다시피 했어요. 교육이나 멘토링을 할 때 참여자의 상태를 잘 이해하지 못할 때는 직전 담당자의 얘길 많이 들었고요. 상임이사님께 쓴 소리를 자주 듣는데 또 그렇게 객관적으로 조언 해주시는 점이 있기 때문에 변화에 대한 자극을 받게 되요. 올 해 새로 들어오신 분이 계신데, 그 분은 엄청 밝아요. 제가 잘하지 못하는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해줘서 좋고. 딱히 한 사람을 꼬집기 어려워요.
Q. 이 일이 내 인생에 끼치는 영향이 있다면 어떤 점이 있을까요?
만약 기존에 했던 일을 계속 해왔다면, 나만 보고 살았을 것 같아요. 지금 하는 일을 통해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되고, 지역사회를 고민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사람을 계속 만나다보니까 조금 힘든 점은 있어요. 다른 사람에게 개방적으로 변하는 건 내가 성장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고 생각하는데, 반면에 내가 아닌 타인의 생각을 오롯이 받아들이는데서 오는 피로감은 적응하기 어렵죠. 그래도 일하는 순간마다 느끼는 즐거움들이 있어요. 워크숍을 진행하거나 참여할 때 사람들이 활발하게 토론을 한다거나, 일하다 지치면 사람들하고 밖에 나가서 놀기도 하고, 다 같이 야근 하면서 맥주 한잔에 위로받는 거? 예전 같으면 회사 밖에서 친구들과 할 것을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한다는 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Q. 3년차, 나는 OOO한 실무자이다.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실무자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누군가 저한테 물어보는 게 있으면 바로 대답해주지 않고 찾아보라고 말해요. 지침을 먼저 보고, 해석이 안 되는 부분 있으면 그때 물어보라고 해요. 일일이 다 알려주면 거기에만 의존하게 되고 성장이 안되니까요.
Q. 활동가이자 개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요?
요즘 이슈 발굴 하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많이 찾아보고 있어요. 특정 분야가 있는 건 아닌데, 이것저것 다 보는 편이에요. 아직은 초기 실무자이다 보니 일을 따라가는 입장인데, 앞으로는 이슈를 주도하고 내 목소리를 좀 더 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요즘 들어 더 정치적인 얘기를 꺼내지 않게 되는 데, 대학 초반 까지는 정치에 대해서도 사람들과 수다 떨 듯이 했는데, 사회에 나오고 나서부터 정치에 대해 타인과 논쟁하는 걸 피하게 되요.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또 실행력 있는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Q. 사회적경제에 취업하고자 하는 (혹은 취업 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당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느 곳이든 내 생각에 완벽한 그림 같은 곳은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은 다만 그 안에서 자신의 색깔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당장 찾아지지 않더라도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았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