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게는, 사회를 위한 경제라고 애기 할 수 있어요. 저도 개인적으로, ‘사회적 경제’라는 의미를 접하면서 계속 갖고있던 의문이 그거였어요. 사회에 대해서 정의를 잘 못 내리겠더라구요. 사전적으로는, ‘인간공동 생활집단’이라고 이렇게 내리는 건데, 그 사회라고 하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서 살아가는,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공동생활집단이라는 건데 . . ..
이런 인간 공동생활 집단을 위한 살림 살이를 어떡 해야 될 것인지를 물어야 된다고 보는 건데, 이게 당연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지금 경제는 경제를 위해서 사회가 동원되는 방식인거죠. 그래서 원래는 경제라는 것을 사회와 뗄래야 뗄 수가 없는 건데, 경제는 ‘정치’, ‘사회’ 이런거랑 떨어진 별도의 ‘시장경제 시스템’이라고 하는 것으로 작동한다라고 하는 신화가 만들어진거에요.
지금, 그러다 보니까 이 경제가, 먹고 사는데 굉장히 중요한 핵심적인 거고,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건데 이것이 전체 공동체 속에서 작동하는 방식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의 별도 시장경제 시스템으로 자기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것처럼 보여 주다보니 사회가 다 시장경제 시스템 속에서 이렇게 고통 받게 되거나 사회가 흔들리거나 위기에 빠지는것이 발생한다고 보는거죠.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사회적경제의 시작은 무엇인가요?"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경제에 대한 얘기를 실제로, 처음으로 시작됐던 것, 그리고 그것을 경험적으로 보여 줬던것은 여러 장면이 있겠습니다만 상징적으로는 1979년에 ‘한살림 농산’이라고 하는 조직이 만들어지면서라고 생각 할 수 있어요. 그게 굉장히 상징적인 장면인데 당시 한살림 농산, 슬로건이 뭐였냐면 “도시에 있는 소비자는 농촌에 있는 생산자의 생활를 책임지고 농촌에 있는 생산자는 도시에는 소비자의 생명을 책임진다” 이것이, 당시 한살림 농산이 시작 될때 슬로건 이었어요.
"도시에 있는 소비자는
농촌에 있는 생산자의 생활를 책임지고
농촌에 있는 생산자는
도시에는 소비자의 생명을 책임진다."
도시에 있는 몇십 가구든, 몇백 가구든 모여서 농촌에 있는 생산자들이랑 만나서 ‘우리는 이런 이런 생산과정을 걸친 배추를 원한다’ 그러면 이런 배추를 만약에 너가 생산을 해주면 우리가 다 소비를 해주겠다. 우리에게 필요한 배추의 양은 이런 정도니까 생산해 줄 수 있니? ‘해줄 수 있다. 아니면 주변에 있는 누구랑 같이 생산해 주겠다’ 이렇게 얘기 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 이럴때 배추 가격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하면, 일반 시장경제는 가격을 고민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시세라고 하는, 시장경제 게임방식에서 배추가격이 결정되는 거지만 이 방식에서는 뭘 생각하는 거냐면 당신들의 생산자들이 우리를 위해서 같이 계약을 해서 이걸 생산 할 때는 배추값이 오르던 떨어지던 상관없이 당신이 생활할 때 필요한 그 생활비를 우리가 같이 생활이 가능하도록 하는 생활비를 우리가 가격으로 보전해줄게 이렇게 얘기 하는 방식이라는 거예요.
사회를 다시 얘기해 보면 이렇게 애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나 혼자 살수 없고, 니가 필요하고, 그리고 현재도 내가 사는 내 삶은 누군가의 노동에 빚지고 있다는 의식을 갖는 거예요. 그게 제가 볼때는 ‘사회 의식’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배를 타고서 바다에 떠 있을 때 거기에 선장도 있고, 향해사도 있고 선원들도 있고 이렇게 다 있어서 그 바다를 건너서 가는 것처럼 우리 인류의, 우리 사회에 살고 있는 구성원들의 삶도 서로가 서로간에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함께 더불어서 살아가는 것 속에서 ‘나도 있다’. 이렇게 이해를 하는 것과 그것이 안 보인체 ‘내가 내 돈 벌어서 시장에 나가서 필요한 것을 산다’ 이렇게 하는 방식은 좀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까 어떻게보면, 패러다임 전환이 이제 필요한 건데, 하나는 개인주의적인 개체로서의 개인만 놓고 보다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보는 것으로 , 그리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것을 좀 더 좋게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될지를 생각하는게 그게 이제 사회적경제 고민이 거기 있는 거에요.
"사회적 경제의 역사 !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나요?"
역사적으로도 어떤게 있었냐면, 처음 인류앞에 공동체로부터 뿌리 뽑혀진 사람들이 도시로 나가서 자기 노동력을 파는 댓가로 임금을 받아야지만 먹고 살 수 밖에 없는 사회가 등장했는데 상당히 비참한 생활을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그때당시 하게 됐을때, 이 사람들을 아무도 지켜주는 사람이 없는거죠. 그 사회가 작동이 잘 안되는거야, 거기서는. 그런 사회속에서 바로 자기 주변에 있는 똑같은 처지에 있는 비참한 노동자들이 다같이 모여 살았을 것 아니에요.
그 사람들이 그런 와중에 뭘 했냐면, 그 온가족의 아이들부터 시작해서 다 노동을 해도 먹고 살기 어려운 시기에 그 중에 가족중에 누군가 한 사람이 사고가 나거나 일하다가 다치면, 가족 전체가 위기에 빠지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거에요. 그럴때, 그 적은 자기 임금의 일부분을 떼어서 그 돈을 가지고 기금을 만들어 놨다가 기금을 낸 사람들중에서 누가 다치면 이 기금에서 도와주는 일들을 한거에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다쳐도 어느정도 그것을 노동자들끼리 지켜줄 수 있는 결사체를 만든거죠. 이게 가장, 대표적인 사회적경제 운동 방식인거에요.
그 다음에 또 하나는, 그런거죠. 내가 상호보조하는 방식으로해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결사체를 만들어서 그것을 대비했던 거, 또 하나는 왜, 우리가 그렇게 많은 시간 노동을 했는데, 우리는 임금이 적냐? 그리고 공장을 운영하는 사장이나 이런 사람들은 공장을 자기가 소유로 해서 운영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돈을 굉장히 많이 벌고 부를 계속 쌓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15시간씩 노동해도 아이들도 계속 일을 해도 가난하고 . . . 그렇다면, 우리가 스스로 돈을 모아서, ‘우리가 공장을 만들어 일하는 사람들이 함께 분배를 하는 방식으로 운영을 해보자.’ 이런 발상들이 일종의 협동조합의 발상인거죠.
'노동자'라는 사람이 산업혁명 시기에 처음으로 등장을 한거잖아요. 앞서, 계속 말한것처럼. 그게, 임금 노동 사회가 탄생하게 된거에요. 자기 노동력을 팔아서, 임금을 받아서 먹고 산다. 그거에 대항하기 위해서 '노동자들끼리 스스로 이런 사회의 비참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뭉쳤다' 이것이 노동자 결사체 운동이다.
여기에는 세가지 방향 있는데 하나는 공제조합을 하고, 또 하나는 생산자, 소비자, 협동조합 운동을 하고, 나머지 하나는 노동조합 운동을 했다. 결국, 여기서는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시장에서 상품으로 팔리는 것에 대해 대항하기 위해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운동이면서, 사회를 위한 운동이었고, 그리고 새로운 경제를 위한 운동이었다. 결국, 이런 운동들이 사회를 위한 경제를 어떻게 해야 될 것인지란 얘기인데, 이때 이 '사회'라고 하는 것은 우리식으로 좀 더 표현하면 '공동체 경제 느낌'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